20 June. Warszawa

Kraków Główny 2006.6.20 (02:12) PKP31200 (07:09) Warszawa Central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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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W 2006.6.20 19:55 LO773 (LOT Polish Airlines) 22:20 VNO

아우슈비츠에 다녀오고 크라쿠프 시내를 더 돌아다니다가, 새벽 02:12에 Kraków Główny 역을 출발해 아침 07:09에 Warszawa Centralna 역에 닿은 심야 열차를 탔던 것 같다. 같은 날 저녁 19:55에 리투아니아 가는 비행기로 폴란드를 떠나, 시간이 부족했을 것 같지만, 그만큼 열심히 다녔기 때문에 오히려 효율적이었다. 또 WAW공항 이름엔 ‘쇼팽’이 붙어 있어서, 전 교황을 기리는 이름의 KRK공항으로 입국할 때처럼, 나라가 소중히 여기는 것이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첫인상은, 고풍스러운 멋이 잘 뭉쳐 따스한 듯한 크라쿠프와는 달리, 현대 도시답게 크고 웅장하게 펑퍼짐한 느낌에 싸늘한 느낌도 들었다. 역 근처만 해도 볼 게 많았는데, 기차에서 만난 폴란드인 남자가 그 근처 곳곳에 대한 간단한 설명은 해주고 나서, 어디 가서 볼일 보고 다시 나타나기도 해서, ‘tourist information’ 문 여는 08시까지 기다리는 게 많이 아깝진 않았다. 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평일 출근 시간대라, 바쁜 사람이 점점 많아지는 것을 느긋하게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가만 보니 대우자동차가 꽤 많아, 폴란드에 공장이 있다고 들었던 게 생각났다.

서쪽으론 묘역까지, 동쪽으론 강 건너까지, 다 걸어서만 다녔는데 (지금은 못할 것 같지만,) 체력이 받쳐줘서 시간이 부족하지 않았다. 특히 유대인 지구의 휑한 인상은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다. 폴란드도 과거를 잘 정리해야 하고, 미래를 열심히 준비하며, 대체로 순박한 사람들에, 문화 예술을 아끼는 등, 여러 면에서 우리나라와 닮은 것 같아 친근감을 가지게 됐고, 그 마음과 함께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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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June. Oświęcim (Auschwitz-Birkenau)

Kraków 2006.6.19 bus 6.19 Oświęc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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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święcim 2006.6.19 bus 6.19 Kraków

크라쿠프에서 하룻밤 머문 다음 날, 독일어로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로 전 세계에 알려진, 폴란드 현지명 ‘오시비엥침-브졔진카’에 버스로 왕복했다. ‘Brzezinka’는 아우슈비츠 ‘II’로, ‘I’에서 셔틀버스로 금방 갔다. 다녀와서는 크라쿠프 시내를 더 둘러보다가 바르샤바 가는 심야 열차를 탔던 것 같다.

예닐곱 언어의 안내서가 알아서 집어가도록 밖에 꽂혀 있었는데, 그 중 오른쪽 끝 즈음에 한국어도 나란히 있어서 놀랐다. 일단 뿌듯하기도 했지만, 우리나라도 일제에 당한 게 있어서 그럴까, 한국인 많이 오는구나 하고 짐작도 가면서, 들어가기도 전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둘러보면서는, 다양한 언어로 된 안내서를 집어 든, 같은 버스를 탔던 사람들과 대충 흐름을 맞추면서, 서로의 표정과 저도 모르게 나는 탄성 등을 통해 ‘인간이라면 누구나’라는, 국적을 초월한 느낌을 함께 나눌 수 있었다. 방명록 등에선 누가 적었든 ‘NEVER AGAIN’이란 간단한 두 영어 단어를 수없이 볼 수 있었다.

실내 촬영은 금지라, 실외에서 찍을만한 몇몇 곳엔 사람이 몰렸는데, 나도 ‘총살의 벽’ 앞에 서서 누군가에게 찍어달라 하려다가 말았다. 과거 많은 사람이 억지로 ‘shoot’ 당했던 곳에서, 나는 ‘shoot’을 부탁하려 했다니, 갑자기 싫어졌던 것이다. 아무튼, 전체는 종합하면, ‘짐승만도 못하다.’라는 표현이 그곳에선 상투적 표현이 아닌, 말 그대로 정확한 표현 같았다. 전시된 사진이나 물품도 자료였지만, 지하 독방에 적힌 낙서가, 분명히 사람이 있던 곳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일제 마루타와 같은 일도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I’에는 본보기를 위한 점호광장 집단교수대도 있고, 총살의 벽 근처 창문을 막아놓은 것이나, 작은 가스실과 화장터는 아예 철조망 밖 구석에 숨겨(?) 있고, 취사장도 있는 등, ‘일 시키려 끌고 왔지만 까불면 죽는다!’ 정도로, 그래도 죽임을 숨기려고는 한 분위기였다면, ‘II’는 특별히 만들었다는 기찻길이 그대로 내부로 이어지고, 위치가 노골적이란 느낌이 드는 가스실과 화장터가 여럿이었으며, 규모도 훨씬 커서, 그냥 처음부터 한꺼번에 죽이기만을 위해 지은 것 같았다. 그에 비하면, 먼저 봤던 총살이나 교수형 따위는 양반인 셈이었다.

일을 시켰단 것은 ‘I’ 정문에부터 ‘ARBEIT MACHT FREI’라고 쓰여있는 문구로도 알 수 있었는데, 안내서엔 전체 해석만 있었다. 영어에 ‘FREE’랑 비슷한 제일 뒤가 ‘자유’란 뜻일 거라 짐작만 했고, 제일 앞은 주어일 테니 ‘일’을 뜻하는 단어일 거라, ‘알바’로 줄여 부르는 그 원어 ‘아르바이트’가 저렇게 쓰는가도 했다. 문득 독일 유대인인 아인슈타인이 미국으로 망명한 게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가, 그 이름을 딴 우유 뒷면에서 봤던 ‘EINSTEIN이 떠올랐고, ‘EI’가 ‘아이’로 발음된단 것에 착안하니, 짐작했던 건 확신이 됐고, 자연히 ‘FREI’의 발음도 알게 됐다. 훗날 독일 기차에서 빈자리를 가리키며 그 단어 하나에 뒤끝 억양만 올려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다.

종일 안타까움과 함께, 내 삶의 소중함을 되새길 수 있는 하루였다.

18 June. Kraków

LTN 2006.6.18 13:10 EZY2333 (easyJet) 16:35 K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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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aków 2006.6.19 bus 6.19 Oświęcim 6.19 bus 6.19 Krakó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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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aków Główny 2006.6.20 (02:12) PKP31200 (07:09) Warszawa Centralna

2006년 6월, 난 이미 그 해 8월 출발할 유럽 대장정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그때 기차로 가기 어려울 것 같은 나라 중에 비자 없이 입국 가능한 나라를 보니 발틱 3국이 있었다. 시간은 일주일이 있어서, 거기에 가까운 폴란드를 더했고, 그리하여 크라쿠프는 내가 유럽 대륙에서 첫발을 디딘 곳이 되었다. 영어가 제2언어도 아닌 비영어권으로 첫 진출이기도 했으나, (홍콩과 더블린에서는 제1언어는 아니지만, 그래도 공용어라 별 지장도 없었다.) 대장정에 앞서 이런 맛보기를 통해 자신감을 키울 필요도 있었다. (각 자국어 다음으로 폴란드는 독일어가, 발틱 3국은 러시아어가 많으니까.)

일요일이었는데, 13:10에 LTN 발 이지젯 2333편으로 16:35에 도착했다. KRK공항 정식 이름을 통해, 전 교황을 기리는 걸 알 수 있었다. 다음날 아우슈비츠에 갔다가, 바르샤바 가는 야간열차를 타기 전에도 시내에 돌아와 있었지만, 숙소는 하룻밤만 잡았던 것 같다. 시내는 다 걸어서 돌아볼 만한 넓이라, 간 사람은 다 비슷한 구경을 했을 것이기도 하여, 명소를 일일이 적는 대신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어 적어보련다.

Barbakan 서쪽으로 쭉 갔다가 꺾어진 즈음엔가, 지하로 계단이 난 화장실에 갔었는데, 나올 때 어떤 아줌마랑 싸웠다. 몇몇 영어 단어를 통해 그 유료 화장실 관리인에게 돈을 내야 함을 알 수 있었다. 비록 나오면 들어가긴 하지만, 남자 화장실 청소 아줌마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게 아니구나! 누가 들어가나, 밖에서 항상 망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우습기도 했다. 비영어권임을 실감했지만, 보디랭귀지와 간단한 단어만을 이용해 소통이 가능은 하단 걸 깨달았다.